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 (문단 편집) ==== SS 하사 프란츠 수호멜(Franz Suchomel) ==== [[파일:franz suchomel.jpg|width=250]] 1907년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태어난 주데텐 독일인으로 1979년 서독 바이에른의 Altötting이라는 체코와 가까운 마을에서 사망했다. 압색담당관으로 물품의 압류와 수집, 유대인 여성들을 위장된 가스실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학살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진 않았다고 인정되어 1964년 트레블링카 재판에서 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67년 석방되었다. 트레블링카 재판 때부터 출소 후 사망할 때까지 트레블링카에 대한 증언을 많이 했는데, 현재 알려져 있는 트레블링카의 상세한 정보 상당량이 이 자의 증언에서 나왔다. 그의 자세한 증언을 듣고 싶다면 클로드 란츠만 감독의 대작 다큐멘터리 [[쇼아(영화)|쇼아(Shoah, 1985)]][* 프랑스의 유대인 감독 클로드 란츠만(Claude Lanzmann)이 1985년 절멸수용소의 유대인 생존자들, 현지 폴란드인, 일부 살아남은 나치 간부, 홀로코스트 학자들의 증언과 인터뷰를 모아 만든 9시간 30분짜리 다큐멘터리이다. 당시를 직접 기록한 시각자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증언과 인터뷰로만 구성되었으며, 생존자들이 당시의 상황을 더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도록 일부러 당시 그들이 하던 일들을 비슷하게 재연하게 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가장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중 하나지만, 감독이 '반 유대주의적인 폴란드'의 시각을 가지고서 홀로코스트 당시의 폴란드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구성을 해 큰 논란이 되었다. 홀로코스트와 폴란드인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골치 아픈 논쟁거리인데, 확실한 건 당시의 폴란드인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긍정적이었는지 또는 부정적이었는지 어느 한 가지로 칼같이 단정해 일반화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인종이 뭐건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는 건 어딜가나 똑같다. 더군다나 인간의 극과 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바로 전쟁이다. [[이레나 샌들러]]같이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도운 의인도 있었지만, SS에 부역한 자도 있었고, 유대인들을 추방해줬다며 좋아하는 자들도 있었다. 따라서 이 글을 보고서 쇼아를 찾아보실 분이 있다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보셔야 할 것이다.]를 보기 바란다. 1부의 중간 부분 ~ 2부의 앞부분에 걸쳐 클로드 란츠만이 노령의 프란츠 수호멜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조금씩 나온다.[* 인터뷰는 1976년 4월 27일 다큐멘터리 제작 초기에 수호멜에게 500 도이치 마르크(약 300달러)를 지불하고 영상으로 기록하지 않을 것, 그리고 수호멜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란츠만은 인터뷰 장소에 몰래카메라를 숨겨 인터뷰를 모두 영상으로 기록했고 그의 작품에 영상 일부를 담았다. 전범이었던 수호멜이 란츠만의 이런 행동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쇼아 상영 이후 일부 학자들이 이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트레블링카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증언에 의해 모인 것이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에서 증언이 서로 상충되어 정확하지 않은 것들도 있는데, 프란츠 수호멜의 증언 중에선 이 문서에 적힌 내용과는 사소한 부분에서 다른 것이 조금 있을 수 있지만 그 차이의 범위가 크지는 않다. 이 트레블링카 문서 역시 쇼아에 나온 증언들을 상당 부분 참고해 작성했다. [[https://collections.ushmm.org/film_findingaids/RG-60.5046_01_trl_en.pdf|란츠만과 수호멜 인터뷰 전문 영어 번역]] 그와 란츠만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트레블링카가 무얼 하는 곳인지 몰랐다고 한다. 나치 상부는 그가 유대인 '재정착지'로 가서 그곳의 제단사와 신발장이들을 감독하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1942년 8월 20일 7명의 동료와 함께 트레블링카로 처음 발령되었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 슈타디에 하사[* Otto Stadie. 수용소장의 행정 보조관이었다. 트레블링카 재판에서 6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수용소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줬어요. 우리가 지나가고 있을 때, 그들은 가스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시체들이 마치 감자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장면은 우릴 공포에 질려 떨게 만들었어요. 우린 돌아와서 짐을 놓고 앉아서 늙은 여자처럼 울었습니다. 그 뒤, 우리는 에베를에게 갔습니다. 우린 그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에베를은 "그럴 수 없네, 내 사람들은 너무 지쳤어. 넌 여기 머물러야 해." 이후 우린 다시 에베를을 찾아갔습니다. "대위님. 전 이걸 견딜 수 없습니다. 전 너무 약하다구요. 여기서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에베를이, "수호멜, 그냥 하기 싫다고 말하게나. 그냥 말하게. 그럼 난 너를 니가 있어야 할 곳에 보낼 거야."(란츠만: '니가 있어야 할 곳'이라구요?) 전방이요. 그곳은 그저 언제 죽는 지를 증명하는 곳이었습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